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방안으로 ‘제방설치안’이 다시 검토될 것이라고 한다. 돌고 돌다가 원점이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건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는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등장할만큼 중차대한 문제인 암각화 보존을 위해 제방설치안과 수위조절안을 두고 십수년간 씨름만 하고 있다. 난데없이 등장한 가변형물막이 설치의 실패로 28억원의 예산과 4년여 세월을 허비하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리곤 다시 울산시가 생태제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운문댐 물 공급이라는 확고한 정답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협의조차 못하고 있는 정치권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울산시가 반구대 보존을 위한 전문가 용역을 처음으로 실시한 것은 2003년이다. 용역을 맡았던 서울대 석조문화재보존과학회(회장 김수진)는 그 해 9월 최종보고회에서 “암각화 보존을 위해서는 △구조취약부분 보강 △침수 방지 △훼손부위 복원·보존처리 △유지관리 등의 순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침수방지의 대책으로 “△사연댐 수위를 상시 50m이하로 조절하는 방안 △대곡천 유로변경 방안 △암각화 주변 제방축조 방안” 등 3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아무리 되짚어봐도 14년이 지난 오늘날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검증도 되지 않은 가변형물막이를 설치한다고 주변환경을 훼손한 것이 전부다.

울산시는 가변형물막이 설치 실패 후 또다시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관한 용역’을 실시한 결과 ‘생태제방안’이 최적으로 나와 지난 주 문화재청에 통보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23일 밝혔다. 생태제방안은 울산시가 십여년전부터 주장해온 방안이다. 암각화 보존과 식수 확보를 위해서는 암각화가 있는 바위벽면으로부터 63m거리에 65m 높이의 제방을 설치해 암각화 앞쪽으로 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적의 주변환경은 유적이나 다름없으므로 가능한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무기력한 정부와 정치권으로 인해 생태제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 ‘경북·대구·울산권 맑은 물 공급계획’을 추진하면 된다. 분명 남아도는 운문댐 물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국보 보존을 위해 울산에 공급해달라는 것인데, 안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운문댐 조성당시 대구시에 배정된 양이 하루 최대 30만t이지만 실질적인 사용량은 18만6000t(2014년 평균) 밖에 안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 중 7만t만 울산에 공급하면 대암댐을 식수전용댐으로 전환해 하루 5만t을 더 확보해서 식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 생태제방을 쌓을 필요도 없이 사연댐 수위를 낮추어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선이 걸림돌이 되는 건가. 내년엔 또 지방선거가 있다. 선거를 핑계 삼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공약이라는 꼼수도 이젠 지겹다. 정부와 정치권의 소신있는 대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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