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계림장군은 가야군을 물리친 승리의 기쁨도 누리기 전에 서라벌이 함락되고 왕이 포로로 잡혔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다. 월풍과 신라군은 전령의 말대로 당장이라도 서라벌로 쳐들어가자고 말했다.

계림장군은 전령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고 집안은 어떻게 되느냐?”

“저의 이름은 박제상으로 박혁거세의 후손입니다.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입니다.”

“호오, 파진찬 물품 어른은 나와 같이 고구려 태학에서 동문수학한 분으로 잘 아는 분이야.”

계림장군은 젊은 박제상을 다시 살펴보았다. 명문 가문을 타고난 늠름한 기, 지혜로워 보이는 반듯한 흰 이마, 강직해 보이는 눈빛과 강인한 턱이 믿음직스러웠다.

“박제상, 내가 만일 서라벌로 지금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왕명을 거역하게 되고 역적이 될 테지.”

“그렇습니다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박제상은 충신으로 알고 있던 계림장군이 역적과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라벌로 돌아가 가야군과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네. 서라벌은 이사품왕의 철기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서라벌로 가는 길목인 달천 철장도 적에게 점령되었네. 지금 지친 나의 군사로 서라벌로 가서 마립간을 구하라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네.”

“그럼, 왕은 잡혀 있고, 신라 사직은 망해가는 데 어떡하시렵니까?”

“가야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왕과 신라를 살릴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그게 무엇입니까?”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네.”

박제상은 계림장군의 말이 맞지만 그동안 위기 때마다 고구려에 몇 번의 사신을 보내도 광개토왕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젊은이 잘 듣게. 당장 번개와 같이 빠른 전령의 발로 고구려 땅 평양으로 가게. 평양에서 먼저 마립간의 동생인 실성군을 만난 뒤 그분과 함께 광개토왕을 만나 구원군을 청하게. 지금까지 마립간이 사신을 세 차례나 보냈으나 광개토왕은 일절 응하지 않았지. 때를 기다린 것이지 거절한 것은 아니야. 마립간이 잡힌 지금 반드시 구원군을 보낼 걸세. 고구려 구원군이 오면 그때 나도 움직이겠네.”

박제상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계림장군의 말이 일일이 옳은 듯했다. 현재 신라의 삼군이 전멸하고 유일하게 계림장군의 병력만이 남아 있다. 전 신라의 영토가 가야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현 상황에서 신라를 구원할 자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밖에 없었다.

“장군님의 분부대로 지금 곧바로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박제상은 장군에게 읍하고 평양을 향해 말을 달렸다.

 

우리말 어원연구

내물왕은 미추왕의 아들이고, 실성군은 미추왕 동생인 각간 대서지의 아들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실성군은 내물왕의 사촌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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