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기 위해 뽑는 행위를 헌혈이라 하고 헌혈 받은 혈액을 환자에 주는 의료행위를 수혈이라 한다.
이러한 헌혈-수혈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901년 오스트리아의 칼 란트슈타이너가 처음으로 ABO 혈액형을 발견하면서 혈액형과 수혈의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공로로 1930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혹자는 이 발견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업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혈액형의 발견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혈에 필수적인 혈액형 발견이 없었다면 ‘과다출혈은 곧 사망’이라는 절망의 공식이 현재도 유효할 것이며, 수술이나 출산이 현재와 같이 안전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헌혈 제도가 도입된 지 40여년이 지났고 많은 발전이 있었다. 우리나라 헌혈의 상당수는 학교나 군대 등의 단체헌혈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개인헌혈이 대부분인 것과 대조적이다.
단체헌혈은 손쉽게 대량의 혈액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나, 헌혈자 관리에 소홀하기 쉽고 군중심리에 의해 헌혈이 이루어지게 되어 위험성이 있는 혈액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중요한 문제는 헌혈자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헌혈증서와 영화예매권 등 각종 물품이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을 위한 헌신인 헌혈이라는 대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혈액 값을 높이는 요인이지만, 헌혈자 확보를 위해서 이런 유인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헌혈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헌혈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헌혈하다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냐고 묻는데 아마도 헌혈과 수혈을 혼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사침, 혈액백 등 헌혈 과정에 사용하는 물품은 대부분 일회용이므로 에이즈 같은 감염성 질병에 걸릴 우려는 전혀 없다. 물론 헌혈과정에서 주사침으로 피부와 혈관을 찌르게 되므로 작은 흉터와 멍이 생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완전 회복된다.
잠깐의 아픔만 감내한다면 헌혈은 가장 편한 봉사활동이다.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서 10분정도 주먹을 쥐었다 펴기만 하면 된다.
이렇듯 헌혈은 가장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인 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가까운 헌혈의 집에 들러 헌혈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보시기를 권한다.
박철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