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병주 마더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진료원장
초등학교 6학년 동수(가명)는 평소 친구가 없고 얌전한 학생이다. 하지만 같은 반 학생의 놀림을 받은 후 상대방의 필통을 빼앗아 발로 밟고, 의자를 들어 던지려는 행동으로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어머니와 함께 소아정신과를 방문했다. 진료실에 들어 온 아동은 치료자와 눈맞춤이 잘 되지 않았고, 묻는 말에 교과서를 읽듯 단조로운 억양으로 대답했다.

아이들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소아정신과를 방문하는 이유 중 흔한 것이 학교적응의 어려움이다. 여기에는 학습관련 문제가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심각한 사회성 부족과 ‘왕따’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주된 증상은 대인관계 어려움으로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에 해당한다.

이 아이들은 또래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가 적다. 있다 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이나 속마음을 읽지 못한다. 말의 숨은 뜻이나 뉘앙스를 알지 못하고 유머나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다투기도 해 친구를 사귀기 어렵고 놀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또 관심영역이 제한적이고 그것에만 몰두한다. 공룡, 식물, 자동차, 역사 등 대인관계보다는 사물이나 사실에 대한 흥미와 지식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집에 놀러 온 친구를 앞에 두고 혼자서 곤충 백과사전을 읽는 등의 행동으로 어머니와 친구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나? 이 아이들의 영유아기 발달상 특징은 자폐증의 그것과 유사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눈맞춤이 부족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적으며, 말배우기가 늦고, 낯가림이 없었던 경우 이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사람을 찾지 않고 혼자 놀기를 좋아해 부모가 ‘키우기 쉬웠던 아이’로 기억한다. 유치원에 들어가도 친구를 찾지 않고 혼자 노는 얌전한 아이로 인식되고 선생님과 또래 사이에서도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지켜야 할 규칙이 더욱 많아지고, 또래관계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해지므로 여기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스스로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친구와 우정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만 사귀는 방법을 모르고 소외됨으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감정표현이 서투르고, 고충을 상담할 줄도 모른다.

동수의 경우 친구들의 화제에 못 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과학현상에 몰두하며 상황에 맞지 않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괴짜’라는 놀림을 자주 받았다. 화가 났지만 표현할 줄을 몰라 속으로만 쌓아두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이 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인간의 사회적 정보처리에 관여하는 뇌의 전두엽과 감정조절에 중요한 변연계의 이상이 거론된다. 유전성이 있어 부모나 형제 중에 비슷한 증상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영유아기에는 사회성의 기초가 되는 어머니와의 애착증진을 도와주고, 언어지연이 동반된 경우는 적극적인 언어치료를 한다. 학령기에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사회성 기술을 교육하고, 정서적인 어려움과 분노조절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또 학교적응을 위해 교사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운동이나 음악 등 아동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 또래관계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아동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학급친구들로부터 보호해 줄 영향력 있는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중증 자폐장애와는 달리 최종적인 언어능력과 지능 저하가 심하지 않아 성인이 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조기에 발견해 발달을 촉진하고 사회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황병주 마더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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