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시살등

배내골 출발 배내골로 하산
고점교~태봉마을 트래킹 후
통도골부터 계곡 따라 올라
신동대굴까지 가파른 경사
신동대의 전설 품은 10m 굴
따뜻한 봄에도 안쪽은 서늘

펑퍼짐한 시살등 정상 서면
사방 탁트인 풍광에 속 시원
청수우골계곡 건너 하산길
계곡물 아직은 너무 차가워

▲ 시살등 북쪽 가까이 죽바우등과 그 뒤로 신불산, 가지산이 조망된다. 시계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울산 남암산과 문수산, 경부고속도로 뒤로는 정족산과 천성산이 보인다. 남쪽 오룡산 너머로는 염수봉, 서쪽 배내골 건너로는 백마산과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 등이 펼쳐진다.

1. 시살등(矢虄磴, 981m)은 영축지맥의 한 구간으로 경남 양산시 원동면과 하북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시살등 동쪽 지산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영축산 절벽을 이용하여 쌓은 단조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아군은 단조성을 거점으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산성이 함락되었다. 산성에서 후퇴한 아군은 시살등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전투를 시작하였고, 몰려드는 적을 향해 모든 화살을 퍼부었다. 시살등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나왔다. 곧 화살 시(矢), 화살 살(虄), 돌 비탈길 등(磴)인 것이다.

시살등을 오르는 길은 몇 있지만, 출발지는 대체로 배내골이나 통도사 쪽이며, 도착지도 배내골이나 통도사 쪽이다. 이날 우리는 배내골에서 올라서 배내골로 하산했다. 코스는 ‘배내천 트래킹길 입구~통도골~신동대굴~시살등~한피기고개~청수우골~파래소 2교’였다. ‘통도골~신동대굴’ 코스는 경사가 심하기도 하고, 태풍으로 길이 끊어진 곳도 있어서 요즘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한피기재~청수우골-파래소2교’ 코스도 좋다. 청수우골과 좌골이 합쳐지는 곳이 사유지라고 출입 제한이 되어 있어서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예전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좋다.

▲ 400여년 전 신동대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신불산 중턱 신동대굴.
▲ 400여년 전 신동대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신불산 중턱 신동대굴.

2. 산행 거리 총 10.68㎞, 예상 소요시간 5시간 30분. 배내천 트래킹길은 고점교에서 태봉마을까지 총 9.77㎞ 정도의 길인데, 잘 단장되어 있어서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배내천 트래킹길을 걷다가 통도골을 만나면 배내천 트래킹길을 버리고 계곡 따라 오른다. 통도골은 길이가 약 2㎞ 정도이며, 시살등 서쪽의 단장천 지류 계곡을 따라 신동대까지 이어지는 계곡이다. 통도골이라는 이름은 이 계곡 길이 통도사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다. 통도골에는 선녀탕이 있는데, 영화 ‘달마야 놀자’를 촬영한 곳이다. 무명폭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도터진골(지도상에는 도태정골)이 합류한다. 도터진골은 말 그대로 도를 깨우쳤다는 뜻이다. 두 계곡의 이름은 다르지만 담긴 뜻은 같다.

통도골 따라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한 편이다. 게다가 사람이 다닌 흔적이 드물다.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20분가량 오르다 다시 계곡을 건너 15분쯤 가다 보면 집중호우에 휩쓸려 길이 사라진 곳이 나온다. 우거진 잡초와 쌓인 낙엽 때문에 길을 식별하기 어려운 곳도 몇 군데 있다. 넝쿨이 보이기 시작한 데서부터 산죽이 있는 곳까지는 경사가 심하다. 살짝 숨이 찰 정도로 힘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좋다. 산이라는 게 참으로 이상해서 오르면 힘들고 어떤 길은 힘에 벅차기도 하지만, 힘들지 않은 길은 재미가 없고 힘든 길은 힘이 들어도 더 찾게 된다.

산죽 우거진 길을 지나니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신동대굴이다. 신동대굴은 성인이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크다. 길이가 10여m, 폭은 넓은 곳이 5m 정도로 바위를 천장으로 하고, 옆으로 길게 패여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 굴 왼쪽 천장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물맛이 나쁘지 않다. 겨울철에는 추위를 피하고자 온돌 형태의 구들장을 놓았던 흔적도 보인다. 따뜻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동대굴 안은 써늘하다 못해 추웠다.

신동대굴과 관련한 전설이 전한다. 신동대라는 사람이 400여년 전 양산 지역 신불산 중턱 신동대굴에 살았다. 그는 축지법에 능해서 하루 저녁에 한양으로 가서 궁녀들을 강간하기도 하고, 낙동강의 잉어를 잡아먹기도 했다. 나라에서는 궁녀들이 그의 몸에 메어둔 명주 끈을 단서로 그를 잡아들이려 했다. 신동대는 하루 저녁에 중국 안동으로 도망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노인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임을 알고 노인에게 잘못을 빌었다. 노인은 신동대에게 장에서 만난 어떤 사람과도 얘기하지 말라고 일렀다. 신동대는 고향에 돌아와 도술을 의롭게 써서 임진왜란 때는 왜구를 무찌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날에 우연히 만난 홀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말았는데, 신동대는 그 날 바드리라는 고개를 내려오다 죽임을 당했다. 죽은 후 홀할머니가 신동대의 굴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가 먹을 정도의 쌀이 굴의 한 모퉁이에서 흘렀다. 할머니가 욕심이 생겨 쌀 구멍을 넓히자, 더는 쌀이 흐르지 않고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신동대굴에서 10분쯤 걸으면 삼거리 안부가 나오고 명품 소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10분가량 가면 이번 산행의 정상인 시살등에 다다른다. 특이한 것은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대개 험한 암봉인데 비해 시살등은 펑퍼짐한 토봉(土峯)이다. 그렇지만 조망은 좋다. 사방이 탁 트여 파노라마로 다가오는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북쪽 가까이 죽바우등과 그 뒤로 신불산, 가지산이 조망되고, 시계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울산 남암산과 문수산, 경부고속도로 뒤로는 정족산과 천성산이다. 남쪽 오룡산 너머로는 염수봉, 서쪽 배내골 건너로는 백마산과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 등이 펼쳐진다. 영남알프스 중 조망은 시살등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3. 마음은 오룡산 방향이었는데, 현실은 한피기고개 방향이었다. 한피기고개에서 왼쪽 방향 청수우골로 하산했다. 백련사 입구에서 배내천을 건너 청수골산장 왼쪽 길로 가다보면 두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파래소폭포로 오르는 청수좌골 길이고 오른쪽은 청수우골 길이다. 청수골은 물 맑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전국에 그 이름이 많다. 청수중앙능선과 합류 지점에서 청수우골계곡을 건넌다. 잠시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차가움에 발이 시려 오래도록 담고 있을 수가 없다.

잠시 오솔길을 걷노라니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숲은 연두색으로 찬란하고 새소리가 귀를 맑게 하니 이 산을 벗어나지 말아야지 싶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커지고 덩달아 사람 소리가 들릴 무렵, 길은 끊어져 있었다. 사유지라고 출입을 막은 것이다. 할 수 없이 계곡을 내려갔고, 계곡을 건너서 사유지를 피해서 갔다. 이윽고 만난 파래소2교, 오늘의 산행이 끝난 것이다. 아쉬움과 피곤함이 함께 밀려 왔다. 다음에는 ‘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함박등~채이등~죽바우등~시사등-~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영축 능선을 걸어야지 다짐했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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