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풍경과 삶 - 9·끝. 가지산 쌀바위
가지산은 자연경관도 수려하지만
굽어진 산길, 인생처럼 왕도 없어
걸으며 흘린 땀 있기에 아름다워
쌀알 두개 붙어선 풍경인 쌀바위
인간의 탐욕 다룬 전설 품고있어
지역 작가들 손에 현대판 각색도

▲ 가지산쌀바위소견(加智山米巖所見, 74x47㎝, 한지에 수묵, 2023).

가지산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가지산의 높이는 1240m로 영남알프스 9개 산 중 제일 높다. 영남알프스 9개 산은 가지산을 비롯해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고헌산의 7개 산(울주 7봉이라 함)에 운문산, 문복산 등을 포함해 이르는 말이다. 최근 울주군에서 실시하는 영남알프스 9봉 인증은 이들 산을 등정하는 행사다. 가지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이다. 가지산이 명산인 이유는 비구니의 수련 도량인 석남사의 사찰과 폭포, 쌀바위 일대의 바위벽과 바위 봉우리들이 어우러진 산세와 경관 등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가지산은 원래는 석남산이었다. 석남산은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언양현, 산천’에 “석남산(石南山) 현(縣) 서쪽 27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1757년에 편찬된 언양현 읍지인 <헌산지>에는 “석남산 현 서쪽 27리에 있다. 달리 가지산(迦智山)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석남산이 가지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산경표>에는 석남산 대신에 가지산이 나온다. 1934년에 간행된 <울산읍지>에는 “가지산(迦智山) 현(縣) 서쪽에 있다. 달리 석남산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여기서 가지산이 석남산을 제치고 주된 명칭으로 등장한다. 이후 석남산이란 지명은 가지산으로 완전히 대체됐다.

울산 12경 중에서 가지산 사계는 자연의 풍경과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연출하는 가지산 풍경을 통해 감탄과 살아있음의 희열을 느낀다.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단지 가지산의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산의 풍경은 나무와 풀과 돌과 흙의 지형이 만든 자연의 모습이다. 산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산을 갈 때 걸어가는 길 때문이다. 인생처럼 산에는 구불구불하면서 오르고 내리는 길이 있다. 그 길은 각자가 자력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산의 풍광은 사람이 걸어갈 길이 있고, 길에서 흘리는 사람들의 땀이 있어 아름답다. 산길은 인공적으로 만든 직선의 길이 없다. 고속도로와 같은 직선의 길은 산을 오르지 않고 터널을 만들어 관통한다. 이에 비해 산길은 곡선이며 구불구불하다. 구불구불한 길에는 사람들의 경험이 배어 있다. 굽은 곡선의 길은 사람들이 거쳐 간 기대와 희망, 우연과 고난, 땀과 기쁨, 환호 등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다. 가지산에서 나는 사계를 기억한다. 가지산 봄날, 운문령에서 귀바위를 거쳐 쌀바위로 갈 때 코를 얼얼하게 하던 솔내음과 산등성이까지 올라와 눈을 캄캄하게 하던 철쭉군락을. 나는 기억한다. 가지산 여름날, 청도 운문산 학심이골 물을 따라 오르다 학소대 폭포 아래 계곡에서 떼 지어 목욕하며 깔깔대던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흘린 땀을 가지산 산등성이에 식힐 때 갑작스러운 돌풍에 바위에서 떨어질 뻔한 일을. 나는 기억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가기 알맞은 가지산 운문령 코스로 함께 가을 구경 간 사람들을. 쌀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지산 산등성이를 보면서 기와지붕의 선을 연상하던 시간을. 단풍 숲길을 내려오면서 본 까투리와 그 새끼들과 다람쥐를.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돌솥밥의 따듯함과 대화의 정겨움과 밥을 산 사람의 따사로운 마음을. 나는 기억한다. 겨울 산행 준비도 없이 가지산 등반 갔다가 귀바위 부근에서 눈속을 헤매며 석남사 쪽으로 내려왔던 날을. 휘청거리고 미끄럼을 타면서 겨우 길을 찾아 내려오다 본 쌀바위의 의연하고도 우뚝 선 자태를. 나는 기억한다.

가지산 쌀바위는 쌀알 두 개가 붙어 서 있는 풍경에다 전설을 담고 있다. 쌀바위 전설은 어떤 수도승이 바위틈에서 나오는 매일 하루 식사량만큼의 쌀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다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가지산 쌀바위는 최근 울산 작가와 시인들에 의해 문학 언어로 탈바꿈됐다. 다음 예를 드는 작품들은 가지산 쌀바위의 창조적 버전이다. 임석 시인의 ‘가지산 쌀바위’는 “뚝 멈춘 바위 위에/ 구름도 걸터앉는// 그 둘레 언양 땅을/ 병풍으로 펼쳐놓고// 북서풍/ 요란한 밤에/ 학이 날아오른다”로 쌀바위 풍경을 눈앞에서 보는 듯 선연하다. 정정화의 짧은 소설 ‘쌀바위’는 사장 몰래 돈을 빼돌려 챙기다가 들켜 아르바이트직에서 쫓겨난 젊은이 이야기다.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로 쌀바위 전설의 현대판 버전이다. 이처럼 가지산 쌀바위는 지금도 여러 사람의 눈길을 끄는 자태와 귀를 당기는 이야기로 전파되고 있다.

나는 글의 매듭을 지으면서 단정적으로 말한다. 가지산을 오르지 않고는 영남알프스를 올랐다고 할 수 없다. 가지산 사계를 보지 않고는 울산의 12경을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지산 쌀바위를 온몸으로 보고 느끼지 않고는 가지산을 다 말할 수 없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풍광이 빼어난 가지산 쌀바위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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